50년전 추억이 서린 논산을 다녀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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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 추억이 서린 논산을 다녀와서 -문화탐방반 조기수 어르신-
그리도 호되게 훈련을 받고 대한민국의 떳떳한 군인생활을 시작한 논산!
만감과 추억이 서린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했고 국토를 지키는 군인의
사명감을 일깨웠던 곳이다.
관촉사!
백제군사 박물관, 계백장군묘, 돈암서원, 명재윤증고택, 그리고 개태사를 들러본 퍽
유익한 문화탐방이었다. 논산8경의 1경인 관촉사에 들어서니 은진 미륵불상이
크게 버텨서있었다. 이곳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반야산에 위치한 마곡사의
말사로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미륵불로 높이 18M로 석조불상으로는 동양 최대라 한다.
또 옆에는 석등(보물 제232호)과 5층 석탑, 이곳에서는 부처의 혜안이 곳곳에
스며들어 넓은 논산평야가 내려다 보인다.
논산 제 4경인 백제군사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려 신라군 5만여명과 결사대 5천여명을
이끌고 황산벌 전투를 벌이다 장열히 전사한 백제 계백장군을 떠 올려 생각해 보았다.
또 백제시대 유물, 군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 계백장군 묘소, 영정을 모신
충장사등 백제와 군사라는 성격을 부여한 전시물, 백제시대 유물은 백제시대 군사적
모습을 생생히 살펴볼수 있는 곳으로 다시 한번 장군의 충절의 정신과 얼을 흠모해본다.
1966년 발견된 장군의 묘소는 풍수적으로 맞지 않는 산 자락에 허술하게 봉분만이
덩그러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충정을 지킨 장군을 이렇게 대접해야 하나 하는
안타가움을 가져봤다. 다행히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곡서원이 바로 뒤편에 있어
향사를 지낸다니 위안으로 삼으려 생각한다. 백제 패망의 사실이 필연적일 것을 생각,
자신의 처자가 욕을 당하지 않도록 몸소 죽이고 자신도 전투하다 장렬히 전사한 충절은
천추에도 없는 일로 고개숙여 명복을 빌어본다.
다음으로 국가지정 사적 제383호 돈암서원으로 옮겨 사계 김장생, 김집부자의
발자취를 생각해보았다. 이 서원은 사계 타계 3년후 인조 12년(1634)에 창건,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된 유서 깊은 서원으로 사계선생을
중심으로 아들 김집, 동춘광, 송준길, 우암 송시열 네분을 모셔고 있고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 보물 제 1569호로 지정한 서원이다.
다음으로 소론파 지도자이자 대학지로 알려진 명재 윤증고택(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190호)으로 조선 숙종때 건립한 조선시대 상류 양반 가정의 표본이 되는 주택으로
안채는 ㄷ 자형 사랑채까지 포함된 구조는 ㅁ 자형의 목조 단층건물로 숙박체험도
할수있단다. 이 고택은 옛날 한국 집에서 볼수 있는 대문이 없다. 또 네모난 안마당 외에
조그만 마당 하나가 더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개태사, 고려 태조 왕건 19년때 고려 건국을 기념해 지은 개국사찰로
과거 큰 사찰이었으나 왜구 침략으로 모두 사라졌다가 근대에 들어 재건되어 현재
미륵삼존불상(보물 제 219호)과 5층 석탑, 태조가 승려 500명의 밥을 지을 솥으로 하사한
개태사 철확등이 있었다. 개태사는 논산8경중 제6경으로 백웅 - 천호산 산장에 감도는
흰구름은 개국사찰의 위용과 함께 온누리에 퍼져 지나간다.
오늘 논산8경 중 제1경 관촉사, 제4경 계백장군 유적지, 제6경 개태사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돈암서원, 명재윤증고택등을 보면서 선현들의 슬기로운 지혜,
그리고 얼을 생각해 본다.
유익한 문화탐방으로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노인복지관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문화탐방반 모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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